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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아랄해의 대재앙이 시작된 배경

by JoAn Healing 2020. 9. 3.

아랄해의 위치와 역사북쪽의 카자흐스탄과 남쪽의 우즈베키스탄 독립 지역인 카라칼파크스탄 사이에 위치하고 아랄해가 놓여 있다. 1500개 이상의 섬이 존재한다고 언급한 '섬의 바다'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였다. 아랄해를 먹여 살리는 두 강은 아므다랴 강과 시르다랴 강으로, 첫 번째 강은 남하를 통해 수역에 도달하고, 두 번째 강은 북부를 통해 도달했다. 만약 그리스 학자 클라우디우스의 지도가 지나갈 만한 것이라면, 그때 카스피안과 아랄 해는 공동체가 되어 일찍이 거대한 내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리학자 박사에 따르면. 닉 미들턴, 아무 다랴는 홀로케네가 시작될 때까지 아랄해를 형성하기 위해 흐르지 않았고 그 때까지 카스피해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시르 다랴가 플리오세 때 키질 쿰에 는 큰 호수가 형성되는 것을 주목했다.

 

대재앙의 역사적 시작은 기록에 따르면, 사막 유목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 지역의 활황된 어업을 지원하던 아랄 해역이다. 20세기에 아랄해는 대략 면적이 68,000 sq.km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륙 수역이라고 보고되었다. 게다가 호수를 먹여 살린 강들도 인근 마을에 물을 제공해 역사적인 실크 루트를 탄생시켰다.그러나 아랄해 재해의 형성이 시작된 것은 1930년대부터이다. 농경지가 늘어나면서 목화산업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물 소비도 크게 늘었다. 쌀과 멜론, 곡물, 목화 등을 재배하기 위해 강물을 떠내려 사막에 관개하려는 소련 정부의 계획에 따라 아랄해의 동맥에 관개용 댐과 운하가 많이 건설되었다. 게다가, 부실하게 지어진 운하도 심각한 수준의 물의 낭비를 초래했다. 중앙아시아 최대 운하인 카라쿰 운하의 물쓰레기는 30~70%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아랄 바다의 수위는 바다 대신에 60 입방 킬로미터의 물이 농장 땅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급격히 낮아지고 있었다. 196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농경지의 면화 생산량이 두 배로 증가함에 따라 양수량은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바다의 수축은 최대 속도로 일어났다; 1961년에서 1970년 사이 일년에 평균 20cm, 1970년대에는 50-60cm, 그리고 1980년대에는 80-90cm에 달했다. 최근의 자료는 아랄 바다의 수위가 매년 평균 31-35인치씩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수위 감소에 따라, 1960년부터 1998년 사이에 바다의 표면적도 약 60% 줄어들었다. 아랄 해역의 면적은 1960년 약 68000인 데 반해, 1998년 기록된 면적은 28687이다. 가장 큰 호수들 중 그것의 위치 또한 이 기간 동안 4위에서 8위로 내려갔다. 1987년에는 지속적인 수축을 통해 아랄해가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다. 북아랄해는 작은 부분(소해로 알려져 있음)이었고 남아랄해는 호수(대해)의 큰 부분이 되었다.

 

훼손된 생태계지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재앙은 번창하는 어업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때 소련에서 어획량의 6분의 1을 생산해 4만여 명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던 수산업이 완전히 파괴됐다. 살충제 사용도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고 산업화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수위 감소율이 높아지면서 아를릭 바다는 수생동물도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짠물이 됐다. 해양생물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점차 어업은 죽어가는 아랄해의 주요 결과 중 하나인 사상 최저치를 거쳤다. 모래언덕에 버려진 낚시꾼들은 그 대참사의 살아있는 기억들이다.아랄해의 생태계는 주로 무기 및 기타 비료 유출에 대한 시험뿐만 아니라 염분 증가의 결과로 파괴되었다. 아랄해역의 물의 염도는 1990년까지 376g/l 정도로 일반 해수의 염도 35g/l에 비해 높았다. 살충제 사용 외에도 무기 실험과 같은 활동으로 소금과 독성 화학물질로 뒤덮인 거대한 평원이 형성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랄해 주변 땅도 오염도가 높고 주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신선한 식수 부족과 함께 건강과 관련된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보고서는 주변 지역에 특정 종류의 암과 폐 질환의 발생률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호흡기 질환, 소화기 질환, 전염병 발생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랄해의 부활우즈베키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죽어가는 아랄해의 정세를 개선하기로 결정한 것은 1991년이었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처음 두 번의 시도는 실패했고, 2005년에야 수위와 바다의 물고기 재고량이 증가하면서 성공을 맛보았다. 1994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나라들은 바다의 부흥을 위해 아랄해 분지 프로그램을 채택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환경을 안정시키고 아랄 해역 주변의 재해 지역을 복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1단계 프로그램은 1992년 세계은행의 도움으로 시작되어 1997년까지 운영되었다. 1998년에 시작된 2단계는 이후 5년간 진행되었고, 3단계는 동시에 진행되어 현재 시행 중인 관개 시스템의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아랄해 참사는 그때서야 카자흐스탄의 혹독한 시도 끝에 수심이 30피트까지 높아지면서 조금 나아졌다. 아랄해의 두 반쪽을 나누는 콘크리트 댐인 2005년 디케 코카랄의 건설은 북아랄의 수위 상승과 염분 함몰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중요한 이정표였다. 정부는 또 다른 둑을 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재활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이 지역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수위 상승과 물고기 재등장은 물론 어업 생산 확대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복구 노력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하자 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중앙아시아 지도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북아랄 바다가 크게 되살아났지만 여전히 남아랄해의 조각과 조각들이 사라져 호반 위에 아랄쿰 사막을 형성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집단적 책임이 있는 심각한 크로스컨트리 방식 등 바다를 되찾기 위해 해야할 일이 더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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